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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친목여행 l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낙원 - 작성자
- 강성보
- 등록일
- 2018-08-02
- 조회수
- 4,258
꽃보다 조금 오래된 할배들, 월드컵 결승 진출국 크로아티아를 가다
지도를 펼쳐보면 크로아티아란 나라는 참 요상하게도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 반도를 마주보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낫 놓고 ‘ㄱ’자 모른다 할 때의 낫 같기도 하고, 닌자가 어둠속에서 표적을 향해 날리는 암기(暗器) 같기도 하고, 때로는 리듬체조 선수가 몸을 완전히 뒤로 젖혀 도약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옛 유고슬라비아의 영웅 티토가 연방내 각 민족의 관할 지역을 조정하면서 크로아티아에게 그런 모양의 영토를 그려줬다고 한다. 일종의 개리맨더링이다.
지난주 약 열흘간 크로아티아에 다녀왔다. 달포전 고등학교 동기 동창 두명과 노닥거리다가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즈음에 부부동반 해외여행이나 한번 가자는데 죽이 맞아떨어져 실행한 것이다. 당초 서 몽고 초원 드라이브 여행으로 계획했으나 한 친구가 TV 예능프로 ‘꽃보다 할배’ 보고나더니 크로아티아가 죽여주는 것 같다며 강력 추천해 그렇게 방향을 바꿨다. 서몽고 보다는 비용이 엄청 더 드는, 나로서는 사치스런 자유여행이었으나 “한번 뿐인 인생, 별거 있나. 에잇, 쓰고 죽자”싶어 좀 무리를 해서 지난 6월30일 두브로브니크 행 터키 항공에 몸을 실었다.
두브로브니크.
제대로 발음하기 조차 어려운 낯선 지명이다. 국제부 기자를 오래 한 탓에 세계 구석구석 웬만한 지명은 한두번쯤 들어봤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곳은 생전 처음이었다. 크로아티아어로 ‘떡갈나무’를 뜻한다는 이 이름을 입에 익숙하게 올리기 까지는 사나흘이 걸렸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 지역, 낫이라면 그 자루의 맨 밑, 도약하는 리듬체조 선수라면 꼿꼿이 세운 발 끝에 해당하는 곳의 항구도시다. 직항이 없는 탓에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을 거쳐 이 도시의 공항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았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천국을 보고 싶은 사람은 두브로니크로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울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유럽인들에게는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순위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실제 가서보니 관광객이 그야말로 버글버글했다. 특히 옛날 베네치아 공화국이 오스만 터키의 침공을 박기 위해 건설했다는 성채(지금은 올드타운으로 불리고 있다)엔 밀려드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부분 유럽 각국에서 몰려온 듯 백인들이었고 여자들은 어깨를 훤히 드러낸, 푹 패인 가슴골을 여과없이 과시하는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었다.
동양인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는데 일본인, 중국인도 있었지만 웬지 시끌벅전한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뤘다. 가수 싸이를 닮은 펑크 헤어스타일의 가이드 박종억 군은 ‘꽃보다 누나’방영 이후 한국인 관광객이 폭증해 매달 수만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귀뜸했다. 그들은 TV 속 고 김자옥과 김희애 등이 커피를 마시던 성벽 밖 절벽위 부자카페에서 왁자지껄하며 정신없이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는 등 유난히 티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사흘을 지냈다. 자유여행이지만 스케쥴은 여행사에 의뢰했는데 여행 일정의 3분의 1을 인구 10만도 채 안되는 이 작은 도시에서 머물도록 돼있었다. 도시 외곽 뉴타운에 있는 3성급 호텔에서 숙박하며 올드타운을 세차례 왕래했다. 시내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처음엔 우왕좌왕 헤맸으나 나중엔 마치 통학, 통근하듯이 편하고 자유스럽게 오고갔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깃발부대 단체여행에서 맛볼수 없는 자유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어 우리들끼리 희희낙락했다.
자유여행이라 겪어야했던 씁쓸한 실패담, 혹은 추억담 하나.
도착 첫날 오후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올드타운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다가 이른바 현지인 ‘삐끼’의 유혹에 이끌려 골목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한 신대영과 이정원이 주도적으로 메뉴를 결정했다. 킹크랩 등 수산물 위주였다. 두브로브니크의 물가는 비싸다고 정평이 나 있지만 메뉴판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리저너블한 가격이 적혀있었고 잠시 뒤 푸짐한 요리가 나왔다. 맛도 좋았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이런 요리에 술이 없으면 안되지”라며 시킨 와인이었다. 수다스런 레스토랑 여자 주인이 다가와 현지 산 특별 와인을 추천했다. 흥이 도도해진 우리 일행은 가격을 미처 확인하지 않고 “오케이” 주문했다. 얼음에 채운 와인 코르크 마개를 우리들 앞에서 딴 뒤 낭랑한 소리가 들리는 유리잔에 따라 시음을 시키는 폼새가 우리로 하여금 마치 일류 최고급 레스토랑에 온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실제 와인 역시 맛있었다. 우리 세부부 여섯명이 주거니 받거니 마셨더니 한병이 금방 동이났다. 또 한병을 주문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계산서를 받아들고 다들 깜짝 놀랐다. 당초 예상했던 가격의 거의 두배 정도가 나온 것이다. 원인은 와인 값이었다. 한 병값이 거의 전체 식사대와 맞먹었던 것이다. 미처 값을 물어보지 않고 주문한 것이 후회됐지만 외국 관광지에서 첫발부터 싱강이 하기도 뭣하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계산서 대로 돈을 지불하고 문을 나섰다. 한 가족당 500유로씩 갹출해 공금으로 쓰기로 했는데 그 3분의 1정도가 점심 한끼에 훅 달아난 것이다. 경리를 맡은 내 집사람이 향후 초내핍이 필요하다고 경고장을 발했다. 저녁부터는 라면으로 때우자는 얘기도 나왔다.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그럴수 없다”면서 상당액의 유로를 자진해서 내놓아 축난 공금을 보충했다. 그러나 그 후 10여끼의 식사는 라면 때우기는 아니었지만 매우 소박해졌다.
지금 크로아티아가 벨기에, 러시아, 잉글랜드 등 강호들을 꺾고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는 크로아티아와 벨기에의 16강전과 러시아와의 8강전을 현지에서 구경했다. 특히 16강전은 두브로브니크의 해변가에 개설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면서 크로아티아인들과 함께 열광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 한국의 응원단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그들은 크로아티아 특유의 붉은 색 체크 무늬 옷을 입고 응원에 열중했다. 아드리아해의 잔잔한 바다 야경 속에서 수백명 붉은 체크무늬들이 일제히 박수치고 환호하고 탄식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두부로브니크 성채를 내려다보는 뒷산 이름은 ‘스르지’라 한다. 발음이 약간 야리꾸리하지만 깍아지른 듯한 제법 갸파른 산이다. 올드타운 인근에서 케이블카가 운행되는데 우리는 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군데군데 뷰포인트에서 아드리아해의 그림같은 풍경을 완상하면서 “스르리 스르리” 올랐다. 그런데 그 산의 정상에서 뜻밖의 친구들을 만났다. 고교 동창들 3명이었다. 이들은 여행사가 주관하는 단체관광객 틈에 끼어 케이블카로 타고 마침 그 시간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누가 말했듯이 100만분의 1도 안되는 확률의 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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